적독가의 기록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

기록하는 마케터 2017. 4. 2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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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줄 요약 : 내 자식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꼭 읽어봐야 하는 책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란?]

1999 4 20, 딜런 클리볼드와 에릭 해리스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한 채 그들이 재학중이던 콜럼바인고등학교로 향했다. 두 사람은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그 다음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가 펴낸 책이다. 책의 구성은 1 [상상도 하지 못한 일] 2 [이해를 향해]로 이루어진다. 1부에서는 딜런이 참사를 일으키기 이전의 17, 2부에서는 딜런이 참사를 일으킨 이후의 17년을 이야기한다.

 

1999 4 20, 장학금 관련 회의에 참석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던 중 긴급전화를 받게 된 수 클리볼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긴급전화 한 통 이후, 그녀는 자신의 사랑스런 막내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에 서서히 마주한다. 그녀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범죄를 저지른 아이의 가정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태도나 행동에 문제가 있으리라고 우리는 대게 생각한다. 아이가 범죄를 일으킨 근본적 원인을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 등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대게 아이의 범죄를 부모의 책임으로 돌린다. 18세기에 나온 '상상주의' 이론은 어머니의 마음 속에 감춰진 음란한 욕망 때문에 아이가 기형으로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20세기에는 어머니가 고압적이고 아버지가 수동적일 때 동성애 성향이 나타나고, 조현병은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하는 부모의 무의식적 소망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아이의 범죄를 부모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수 클리볼드는 아이의 범죄를 방관한 부모로 오인 받고, '제대로 된 부모라면' 아이의 범죄계획 혹은 아이의 우울증 상태를 몰랐을 수가 없다고 질타 받는다.

 

수 클리볼드는 정말 딜런의 우울증/범죄계획을 몰랐을까?

 

1 [상상도 못한 일]에서 참사 이전 딜런 가족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놀랍게도 딜런의 삶과 딜런 가족은 부러울 정도로 화목하고 행복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불우하고 학대 받고 살아온 범죄자의 가족 생활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바람직한 가족에 가까웠다. 이렇게 행복하게 지낸 사람이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을 했다고?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특히 딜런은 곧 진학하게 될 대학교를 아버지와 함께 구경하러 갔다 왔으며, 특히 참사 하루 전 날에는 파티에서 춤도 추며 최고의 밤을 지냈다고 한다. 도저히 살인-자살을 꿈꾸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수 클리볼드 또한 자신의 사랑스런 아들이 자기 친구들을 무참히 살인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협박을 받아 살인을 저질렀거나, 어떤 속임에 넘어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녀에게는상상도 못한 일이었고 믿을 수가 없는 사건이었다. 2 [이해를 향해]에서 그녀는 딜런의 일기들을 읽으며 아들의 살인-자살을 받아들이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딜런의 일기를 통해서 그녀는 아들이 2년 동안 우울증 등 뇌건강에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어떻게 아들이 2년 동안 자신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는지 믿지 못하면서.

 

"마침내 딜런의 일기를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딜런은 죽기 2년 전부터 벌써 우울감과 자살 충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우리에게 그렇게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딜런을 돕지 못햇다니. 나는 딜런의 일기를 읽으며 울고 또 울었다. 딜런이 남긴 유서나 마찬가지였다. 슬프고 가슴 찢기는 날이다." - p259

 

나 또한 수 클리볼드가 자신의 아들이 살인-자살에 이르기까지 아들의 뇌건강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수 클리볼드는 어떤 한 여학생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받는다.

 

"엄마 아빠가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길 바랐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면 부모님도 내가 보는 내 모습으로 나를 보시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있고 못생긴 아이로요." - p181 (+ "한 심리학자가 자기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존경받는 학자고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 전부 아는 사람인데, 자식의 자살을 감지하지 못했다." - p398)

 

위 여학생의 편지를 읽고 나니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딜런과 딜런의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도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믿어주는 부모님이 곁에 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에게 나의 힘듦이나 괴로움을 일절 말하지 않는 편이다. 부모님을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나의 나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부모님에게 언제나 자랑스럽고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지녔던 딜런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딜런은 자신의 아픈 뇌건강 상태를 부모님에게 감쪽같이 숨겼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감쪽같이 속았으리라. 수 클리볼드가 진심으로 아들의 범죄계획과 아들의 뇌건강 상태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이제는 믿는다. 많은 부모님들이 알았으면 한다. ‘내 아이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라는 걸. 아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부모가 되거든,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 책을 다시 한번 꼭 일독하겠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 특히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님, 내 자식은 내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부모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일독을 추천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치아 관리, 영양 균형, 용돈 관리의 중요성 등을 가르친다. 아이들에게 자기 뇌의 건강을 잘 살피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기 뇌건강을 건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몰랐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후회는 딜런에게 그걸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 p442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얻어가는 것

 

뇌건강에 대해 알게 모르게 갖고 있었던 편협한 사고를 지울 수 있었다.

 

"아무도 다친 무릎을 의지와 용기로 낫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낙인을 피하려고 스스로 벗어날 방법을 찾으려고만 한다." - p437

 

"자살 유족 모임에서 몇 년을 활동하면서 교육과 예방으로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첫번째 모임과 그 후 수십 차례 모임에 참석하면서 위안이 되면서 동시에 두렵기도 한 깨달음을 얻었다. 누구라도 이 자리에 올 수 있다는 것." - p398

 

누구나 한순간 발을 헛디뎌 발을 다칠 수 있듯, 누구나 뇌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발을 삐어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숨기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또한 다친 발을 치료하지 않고 부상을 의지의 문제로 해결해나가려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뇌건강 문제도 마찬가지다. 뇌건강 치료를 부끄러워 하거나 숨겨야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또 뇌건강 문제를 의지의 문제로 생각하거나 의지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이 책을 통해 뇌건강을 일종의 의지의 나약함으로 생각하거나, 자살은 병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착각했던 것을 지울 수 있었다. 나 스스로 나의 뇌건강을 잘 살피고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기관, 전문의에게 당당히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주변에 뇌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편견없이 대하는 사람이 되기를. 더 나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뇌건강까지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 부모가 자식의 일기를 훔쳐보는 일은 옳지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현재로써는 아이의 뇌건강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때로 아이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외 인상 깊었던 부분

 

살인-자살 언론보도 윤리

1) 자살의 원인을 단순하게 설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은 실연이나 해고가 자살을 고려할 이유가 된다고 암시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된다. 해고나 실연이 낙담의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이런 일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2) 범인을 다른 학살범과 비교하지 않는다. 특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강조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죽고 다쳤고 얼마나 많은 총알을 날렸는가 하는 수치와 사진이 특히 위험하다. 경쟁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3) 가장 중요한 것은 의도치 않게 살인범들을 영웅으로 만들지 않는 일이다. 범인의 이름을 계속 반복해서 말하지 말고 대신 '살인범' 혹은 '범인'이라고 지칭한다.

4) 총격 범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말고 특히 무기를 든 모습이나 학살 당시의 옷차림을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 사용된 무기나 다른 증거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 p233 ~239

 

한국 사회에서 많은 학생들이 자살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학생 자살 관련 보도가 많이 없어서 의문이었던 적이 있다.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으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언론에서 베르테르 효과를 인지했기 때문에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자살로 인한 죽음, 특히 십대의 자살은 언론에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와 미국정신보건원에서 강조하는 지침을 따른 것이다. 두 기관 모두 언론보도를 제한하고 절제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 p233

 

이외 인상 깊었던 구절

 

"누구든 장애를 가장 먼저 봐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사람이기 이전에 장애인인 거예요." - p189

 

"넌 딜런이 한 일을 용서할 수 있니?"

"딜런을 용서한다고? 내 자신을 용서하는 게 내 일이야" - p398

 

"이미 우리 곁은 떠난 사람에게는 너무 늦었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 -p405

 

"딜런이 악한 사람이었던 걸까? 이 질문을 붙들고 얼마나 씨름했는지 모른다. 마침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 사람들이 자살은 선택이고, 폭력도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인력으로 다룰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만 자살 시도에서 살아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자이자 자살연구가 메슈 녹 박사는 '의사결정기능장애'라는 내 마음에 쏙 드는 표현을 썼다." - p434

 

"콜럼바인이나 버지니아테크, 샌디훅 같은 참사가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은 '?'이다. 이 질문은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나는 '어떻게?'라고 묻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일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다 보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해결책 없이 단순한 해답에 안주하고 만다." - p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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